Artist Note

M i n   H e a   J u n g   S o o 
 추억의 연료

민해정수

세상이 시끄럽다. 전쟁통에 전염병에 경제도 서로 나쁘다며 안 좋다며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다. 
뉴스 화면에는 밝은 세상 이야기가 언제 나왔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불행을 유흥으로 즐기는 사람들, 귀하게 여기던 사람 목숨의 무게가 한없이도 가벼워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게 빨라지고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간의 거리는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들은 바로 옆 사람조차 보지 못하고 눈부시게 밝은 휴대폰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핑크빛이 아닌 잿빛처럼 보인다.
 
우리 어린 시절 배고프고 무엇이든 부족해도 가족의 사랑과 이웃의 정
때가 되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부족해도 서로 힘이 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봄이 되면 갓 올라온 쑥을 뜯어 떡을 지어 주변 이웃과 나누고
여름이 되면 비가 오는 처가 지붕 밑에 팔을 괴고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수박을 먹고
가을이 되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척들과 모여 맛있는 햇과일과 음식을 나누며
겨울이 되면 따뜻한 온돌에 누워 귤 하나 까먹던 그런 시시하지만 아름다운 추억들
 
추억들은 삶의 연료와도 같아서 어릴 적 쌓아둔 추억을 가지고 어른이 되면 이 추억을 태워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어릴 적에 질 좋고 많은 양의 추억을 쌓아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 태우고 살아갈 추억의 연료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추억이 없는 어른은 차갑다. 냉정하며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한마디로 말하면 인정머리가 없다. 
우리는 따뜻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핑크빛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나는 그래서 나의 가장 마음 깊숙이 오랜 시간 타오르고 있는 추억들을 꺼내 만들어낸다. 
가장 밝게 빛나던 추억들의 형상들을 한지로 만들어내고, 잿빛 같은 세상에 한 움큼의 핑크빛을 퍼트리려고.. 
나의 핑크빛 추억을 보고 사람들의 추억의 연료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올해 작품 키워드는 연년유여이다.
‘올해는 우리 모두 풍족하고 평안하길’ 이라는 뜻이다.
시끄러운 세상이
달항아리를 닮아 동글동글해지기를
수탉과 암탉의 가족처럼 평화롭기를
나의 소박한 바람을 담아서 작업하였다.

 
< 2022년 여름이 지나 가는 10월 구리 작업실에서 >




 추억의 狀 
(母胎안에서)

민해정수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진 풍경 하나가 있다.
 
어린 시절 툇마루에 서면 동화같이 펼쳐지는 풍경
 
넓은 마당을 둘러싼 꽃나무 울타리
 
마치 잔디밭처럼 펼쳐진 청 보리밭
 
그 사이를 흐르며 흐려지는 실 개천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작은 아기 새의 짹짹거리는 소리부터
 
어미 새의 바쁜 날갯짓 소리까지
 
이름 모를 꽃들은 울타리에 가득피고
 
산들바람에 묻어오는 향기에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턱을 고이고, 게으른 몸짓을 하고,
 
눈이 부셔 반쯤 감은 눈에 화사한 핑크빛이 번진다.
 
먹거리 가득채운 광주리를 이고 들어오시는 할머니
 
그 잔소리까지 핑크빛에 물들어 간다.


 
나의 기억 속 추억의 이미지와 그 시절 가슴에 각인되어진 대로 하나하나 꺼내어 디테일함이 살아있게 하나하나 만들어 내었다. 
추억이란 것은 뭉게뭉게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의외로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추억이다. 
내 작품 안에서 새와 꽃과 벌과 나뭇잎.. 디테일들은 나의 또렷한 추억의 상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서로 뒤엉켜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그 시절 추억처럼 또 다른 추상적인 이미지를 발견 할 수 있도록 바래본다.
 


< 2021년 월산리 작업실에서 >




 어머니의 교향곡
(母胎안에서)

민해정수

빨래는 집안의 우물이나 집앞의 시내에서 한다. 
백의는 세탁을 자주 해야 하므로 여자들의 큰 일이었다. 이불호청, 두루마기 등의 빨래는 빨래방망이를 사용한다. 
속내의는 제외하고는 대부분 풀을 먹인다. 풀은 밀가루풀을 이불호청과 삼베 등을 먹이는데 사용하고, 
남은 밥을 이겨서 하는 밥풀은 고운 명주나 옥양목 등에 한다. 
다마르고 나면 다름질을 한다. 다듬이질은 주로 명주(밍지), 이불호청, 비게호청(베게호청)을 많이 한다. 
다듬이할 것은 먼저 풀을 해서 꼽꼽할 때 개어서 문종이로 아래위를 싼 다음 발로 밟는다. 
그리고 나서 따딤돌 위에 올려 놓고 따딤방맹이로 뚜드리면 풀살이 올라 광이 나게 된다. 바쁠 때는 둘이서 마주 앉아 맞따딤질을 한다. 
따딤돌은 주로 화강석을 이용한다. 그러나 특수하게는 잘 다듬어진 자연석을 쓰기도 한다.

다딤이질 소리는 심장의 요동치는 소리와 같다. 
우리는 태아에서부터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듣고 살아왔다. 
그 심장의 소리는 최초에 듣는 교향곡 일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생활의 애환이 묻어 있는 소리, 희노애락이 담겨진 소리, 
우리의 심장의 박동도 이와 같을 것이다. 
힘참의 박동도, 경쟁의 순간에도 격렬한 운동이 끝난 후 휴식을 취하는 그 순간에 들려 오는 우리의 심장 소리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
그 심장에 소리는 모태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교향곡이며, 자연의 소리로 흐를 것이다.
 


< 첫 개인전을 치루며 >